9년차인데 아직도 폰트 고르다 반나절 날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한테 후배가 멘토링 부탁 DM을 보냈어요. 정중하게 거절할 명분을 찾다가 문득, 제가 5년차 때 붙잡고 늘어졌던 선배도 사실 별거 없었던 거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냥 그때 옆에 있어준 게 전부였던 것 같은데. 자격 같은 건 원래 없고 시간만 내주면 되는 걸까요, 아니면 어설프게 나섰다가 남의 커리어에 흠집만 낼까요.
후배가 멘토 해달라는데 제가 자격이 될까요?
9.7 09:02조회수 0댓글 10
저도 2년차 때 사수한테 매주 30분씩 시간 뺏었는데, 그분이 딱히 정답을 준 기억은 없어요. 그냥 제 시안 보고 "나도 여기서 늘 헤매" 이 한마디 해준 게 제일 오래 남았고요. 폰트 고르다 반나절 날린다는 것도 후배 입장에선 오히려 듣고 싶은 얘기일 것 같아요. 9년차도 저러는구나 하고요. 근데 저는 아직 누굴 멘토링 해본 적이 없어서, 진짜 흠집이 날 수도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거절할 명분 찾다가 여기까지 오신 거면 이미 마음은 반쯤 기울어 계신 것 같은데.
저는 3년차 때 인턴 사수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알려준 건 사실 파일 정리하는 법 정도였어요. 그런데 몇 년 뒤에 그 친구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그때 자기 시안 보고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라고 물어봐준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고.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폰트 고르다 반나절 날리신다는 게 오히려 신뢰가 가는데요. 9년차씩 되어서도 그렇게 고민한다는 걸 후배가 옆에서 보는 것 자체가 배움일 것 같아요. 커리어에 흠집 내는 건 오히려 정답을 확신하는 선배 쪽 아닐까요. 다만 저도 "이 정도 얘기해도 되나" 싶어서 매번 조심스럽긴 합니다. 처음부터 멘토라고 이름 붙이기보다 한두 번 가볍게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도 처음엔 "가르쳐줄 게 있어야 멘토"라고 생각했는데, 윤서님 얘기 들으니 그게 아닌 것 같네요.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 물어봐준 게 전부였다는 그 말이 딱 제 5년차 때랑 똑같아서요. 그 선배도 답을 준 적은 없고 그냥 계속 물어봤거든요. 가볍게 한두 번 먼저 만나보라는 것도 좋네요. 멘토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저도 답을 줘야 할 것 같아서 부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
혹시 그 후배가 "정답"을 바라고 DM 보낸 걸까요? 저는 아직 학생이라 멘토를 해본 적은 없고 받아본 쪽인데요, 작년에 포트폴리오 봐주신 현업 선배님이 사실 구체적인 피드백은 별로 안 주셨어요. 대신 제 시안 보시면서 "나도 이 부분은 아직 헷갈려" 하신 게 이상하게 제일 오래 남았거든요. 폰트 고르다 반나절 날린다는 얘기, 그거야말로 후배가 듣고 싶어할 종류의 말 아닐까 싶어요. 근데 커리어에 흠집 낼까 걱정하시는 부분은 저도 궁금하네요. 멘토링 중에 잘못된 방향 짚어주면 진짜 그렇게 되기도 하나요? 현업 분들 답변이 궁금합니다.
저도 그 부분이 제일 무서웠는데, 9년 동안 보니까 커리어에 흠집 내는 건 틀린 조언 자체보다 "무조건 이렇게 해"라고 단정하는 태도더라고요. 저도 3년차 때 선배 말 믿고 반년 헤맨 적 있는데,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제가 의심할 여지를 안 남겨준 말투였어요. "내 경우엔 이랬어"라고 말하면 후배가 알아서 걸러 듣거든요. 헷갈린다고 말해준 선배가 오래 남았다는 얘기, 그게 답인 것 같네요.
혹시 그 DM 받고 처음 든 생각이 "왜 하필 나한테?"였나요? 저는 3년차라 멘토를 해본 적은 없고 아직 붙잡고 늘어지는 쪽인데, 제가 지금 붙잡고 있는 팀 선배도 폰트 고르다 반나절 날리는 거 옆에서 다 봐요ㅋㅋ 근데 그게 오히려 안심이 되더라고요. 9년차도 저러는구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후배분도 정답을 받으러 DM 보낸 건 아닐 것 같아요. 그냥 자기보다 6년 앞서 걸어간 사람이 뭘 고민하면서 걷는지 보고 싶은 거 아닐까요. 커리어에 흠집 낼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흠집 내는 경우는 잘 못 본 것 같아요.
네, 솔직히 첫 생각은 "왜 하필 나한테?"였어요ㅋㅋ 근데 수빈님 말 듣고 보니 제가 5년차 때 선배 붙잡았던 이유도 정답 때문은 아니었네요. 그 선배도 클라이언트 전화 받고 한숨 쉬는 거 옆에서 다 봤거든요. 그게 위로가 됐던 거지 조언이 아니라. 반나절 날린 얘기까지 그냥 다 해볼까 싶어졌어요.
저도 진짜 아무것도 아닌 얘기에 제일 많이 배웠어요. 사수가 "이거 나도 몰라서 세 시간 헤맸다"고 한 마디 툭 던진 게, 잘 정리된 피드백보다 오래 남더라고요. 아 저래도 되는구나 싶어서요. 반나절 날린 얘기 꼭 해주세요. 후배분이 제일 듣고 싶은 게 아마 그거일 거예요.
저는 좀 다르게 봐요. 자격이 되냐 안 되냐보다 서로 뭘 주고받기로 했는지를 정하는 게 먼저인 것 같거든요. 4년차라 멘토 해본 적은 없고 아직 부탁드리는 쪽인데, 작년에 선배한테 포폴 첨삭 "30분만" 부탁드렸다가 두 시간을 쓰시게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죄송한 마음이 컸던 게, 제가 뭘 묻고 싶은지도 정리 안 된 채로 파일만 던졌거든요. 선배 입장에서는 정답을 줘야 할 것 같은 압박만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민경님이 어설프게 나서는 게 문제가 아니라, 후배가 뭘 바라는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게 서로 지치는 지점 아닐까 싶어요. 폰트 고르다 반나절 날린다는 것도 사실 후배 입장에선 듣고 싶은 얘기일 거고요. 다들 이런 건 처음에 어떻게 정리하고 시작하세요?
저도 그 얘기 듣고 좀 찔렸어요. 후배 DM 받고 제가 한 게 "뭐 물어보고 싶으세요"가 아니라 일단 시간부터 언제 되냐 물은 거였거든요. 사실 외주 할 때는 금액보다 수정 횟수를 먼저 못 박으면서, 멘토링은 그런 걸 정할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었더라고요. 9년 동안 보니까 저도 5년차 때 그 선배한테 정답 받으러 간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가 궁금했던 거고. 그래서 이번엔 답을 주는 자리가 아니라 제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자리라고 먼저 말해두려고요. 반나절 날리는 것도 거기 포함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