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디 전공 대학생인데요, 인턴 중에 기획서 없이 회의에서 말로만 방향 듣고 바로 작업 들어간 적이 있거든요. 근데 나중에 "그때 그 얘기 아니었는데"가 나오니까 제가 남겨둔 근거가 하나도 없더라고요ㅠㅠ 학교 크리틱은 교수님 말 메모만 해도 넘어갔는데 실무는 다른 것 같고요. 혹시 이럴 때 회의록을 직접 써서 다시 확인받으시나요? 아니면 기획서 나올 때까지 착수를 미루는 게 맞나요? 방법 좀 공유해주세요!
기획서 안 받고 구두로만 일 시작해보신 분 있나요?
10.1 04:58조회수 0댓글 11
저는 3D 쪽이라 케이스가 좀 다를 수 있는데, 구두로 시작했다가 라이팅부터 다 갈아엎은 적이 있어요. 회의에서 "자유롭게"라는 말만 듣고 3분 시퀀스를 컨셉 5개로 뽑았는데, 나중에 "더 클린한 느낌"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제가 붙들 근거가 하나도 없었거든요ㅠㅠ 그 뒤로는 회의록을 따로 쓰기보다, 러프를 두세 개 만들어서 "이 방향 맞나요" 하고 다시 확인받는 쪽으로 바꿨어요. 3D는 엎으면 렌더 시간이 통째로 날아가서 글보다 그림으로 확인받는 게 빨랐더라고요. 착수를 미루는 건 저도 잘 안 되던데, 소희님 인턴 때는 러프 보여드릴 여유는 있었나요?
3D는 진짜 다르겠네요, 렌더 시간이 통째로 날아간다는 게 제일 무섭게 들려요ㅠㅠ 러프로 먼저 확인받는 방식, 제 인턴 때 못 했던 거라 뜨끔하고요. 여유가 있었냐 하면 솔직히 있었는데 제가 안 했거든요. 들은 대로 바로 키샷 돌려서 컷을 뽑아버렸고, 중간에 "이 방향 맞나요" 묻는 게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겁났어요. 근데 지금 보면 그 겁이 제일 비싼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러프 두세 개 뽑을 때 완성도는 어디까지 올려서 보여주시나요?
저는 러프 단계에서 텍스처랑 라이팅은 아예 안 건드려요. 회색 셰이더만 물린 프리비즈 수준으로 카메라랑 실루엣, 덩어리감만 보이게 해서 두세 개 뽑거든요. 예쁘게 뽑아버리면 클라이언트가 색 얘기부터 시작해서 정작 방향 얘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오히려 좀 못생겨야 "이게 그 방향인가요"를 물을 수 있어서, 완성도를 일부러 낮춰두는 쪽이에요.
회의록을 쓰신다면 어느 쪽에 남기실 생각인가요. 제가 8년 동안 본 바로는 근거가 되느냐 마느냐는 문서 형식이 아니라 상대가 그 문서에 답을 했는지에서 갈립니다. 회의록을 잘 써서 보내도 상대가 안 읽으면 나중에 똑같이 "그 얘기 아니었는데"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저는 회의 끝나고 세 줄만 보냅니다. 결정된 것, 제가 이렇게 이해한 것, 이대로 착수합니다. 그리고 답을 받고 시작하죠. 형식이 아니라 답이 근거입니다. 착수를 미루는 건 저는 반대입니다. 기획서 나올 때까지 2~3주 비는 일이 흔하고, 그 시간을 비워두면 인턴 입장에서 설명이 더 어려워지거든요. 대신 미룰 게 아니라 뭘 가정하고 시작했는지를 먼저 적어두시는 게 맞습니다. 안 적으면 두 달 지나서야 그 가정이 틀렸다는 걸 압니다.
저는 반대로 기획서를 받고 시작한 건에서도 똑같이 데였어요. 문서가 있어도 회의에서 말로 뒤집힌 부분이 결국 근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9년 하면서 굳힌 건 회의록을 따로 쓰는 게 아니라, 회의 끝나고 한 시간 안에 "오늘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시안 3개·수정 2회로 잡겠습니다" 메일 한 통 보내는 쪽입니다. 회신이 없어도 그 메일이 남고, "그때 그 얘기 아니었는데"가 나오면 날짜가 박힌 텍스트가 제 쪽에 있는 셈이거든요. 다만 인턴이면 그 메일을 누구한테 보낼 권한이 있는지가 걸리는데, 소희님은 사수분 참조 걸고 보낼 수 있는 구조인가요? 착수를 미루는 건 저도 프리라 가능한 얘기여서, 인턴 입장에선 어떤지 다른 분들 답이 궁금하네요.
저도 그 메일 방식이 제일 현실적으로 들리는데요, 인턴 계정으로 클라이언트나 윗선에 바로 보내는 건 제 상황에선 어려웠어요. 그래서 사수분께만 "오늘 회의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하고 확인받는 식으로 썼는데, 참조는 사수분이 넣어주시는 거라 결국 그분 재량이더라고요ㅠㅠ 착수 미루는 것도 제 선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었고요. 근데 그렇게 보내면 답장이 "네 맞아요" 한 줄이라도 오긴 왔는데, 민경님 경험상 회신 없는 메일도 나중에 근거로 실제로 먹히던가요?
저는 회신 없는 메일도 남겨두는 쪽인데, 그게 근거로 먹힌 적은 솔직히 별로 없었어요. 4년차 때 연봉협상을 메일로 했다가 제가 쓴 숫자만 최종안처럼 굳어버린 적이 있는데, 상대가 동의를 안 해도 제 문장은 그대로 남더라고요. 다만 그건 방향이 반대로도 작동해서, 나중에 "그 얘기 아니었다"가 나올 때 최소한 제가 언제 뭘 이해했는지는 증명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회신 없는 메일은 합의의 근거가 아니라 시점의 근거로 쓰는 게 현실적인 것 같아요. 한 줄이라도 "네 맞아요"가 온 건 그 자체로 값이 다르니까, 그런 답장 온 건만 따로 모아두시는 것도 방법이고요.
저는 반대편에서 구두로 방향 던진 쪽에 앉아본 적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회의록은 기록용이 아니라 확정 시점을 만드는 장치로 쓰셔야 합니다. 저는 회의 끝나고 "이 세 가지로 진행합니다, 다른 의견 없으면 오늘 퇴근 전까지 회신 없어도 확정으로 보겠습니다"까지 붙여서 보냈거든요. 그냥 정리만 보내면 읽고 안 읽고가 상대 선택으로 남습니다. 착수를 미루는 건 저는 반대합니다. 기획서가 늦게 나오는 조직에서 대기는 소희님 손실로만 잡히더라고요. 대신 그 메일에 "기획서 확정 전 작업분은 변경 가능"을 한 줄 넣어두시면, 나중에 뒤집혀도 재작업이 아니라 예정된 변경이 됩니다. 인턴 신분에서 이 문장을 쓰는 게 부담스러운지는 제가 요즘 인턴 자리를 겪어본 게 아니라 단정은 못 하겠습니다.
저도 첫 회사에서 회의 끝나고 바로 피그마 열었다가 똑같이 당했는데요, 지금은 회의록이 아니라 시안 안에 한 줄 박아두는 쪽으로 바꿨어요. 프레임 옆에 "이건 9/16 회의에서 A안으로 가기로 한 거" 이렇게 텍스트 레이어로요. 별도 문서는 아무도 안 열어보거든요. 시리즈A라 인원이 적어서 물어볼 사람이 옆자리에 있으니까 더 그래요. 착수를 미루는 건 솔직히 저는 못 했어요. 스타트업은 기획서가 나중에 나오거나 아예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기다리면 일정만 밀리더라고요. 다만 소희님은 인턴이시니까 상황이 좀 다를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말로 들은 방향을 시안에 적어서 확인받는" 방식은 인턴이 하기에도 부담이 적은 편이에요. 문서 내라는 요구가 아니라 시안 보여드리면서 같이 확인하는 거니까요. 혹시 그 인턴 때 방향 얘기가 회의 중에 한 번에 정해졌던 편인가요, 아니면 여러 번 왔다갔다 했나요? 왔다갔다 하는 건이면 시안 옆 메모로도 안 잡히는 경우가 있어서 궁금합니다.
회의 중에 한 번에 정해진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저 인턴 때도 앞에서 A로 얘기가 됐다가 회의 끝나갈 즈음에 "근데 그거 말고" 하고 다시 돌아온 건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에 들은 말만 붙잡고 있었던 거고요. 시안 옆에 메모 남기는 방식은 저도 인턴 계정으로 부담 없이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왔다갔다 한 건이면 결론만 적어두면 또 "그건 중간에 바뀐 거잖아" 소리 나올 것 같아서요. 혹시 채원님은 그런 건 바뀐 이력까지 같이 적어두시나요?
저도 바뀐 건이면 결론만 안 적어요. 프레임 옆에 "9/16 회의: A → 회의 끝에 B로 변경, 최종 B" 이렇게 두 줄로 남기는데요, 화살표 하나 그어두는 게 전부라 인턴 계정으로도 부담 없었을 것 같아요. 결론만 적으면 말씀하신 대로 "중간에 바뀐 거잖아"가 나오고, 그때 다시 근거가 없어지거든요. 근데 이력까지 다 풀어쓰진 않아요. 바뀐 시점이랑 최종만요.